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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

[경향신문] 희망도 불타버린 판자촌에 '잔인한 폭염'

희망도 불타버린 판자촌에 ‘잔인한 폭염’

개포동 임시거주 컨테이너 ‘찜통’… 아이들 땀띠 고통
영등포 쪽방 실내온도 42도 “술 취해야 잠 들어” 한숨

경향신문|정희완·주영재 기자 입력 11.07.20. 21:48 (수정 11.07.20. 23:06)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바람이 나옵니다. 방안이 더워서 늘 밖에 나와 쉬지만 바람이 불지 않을 땐 그것도 소용없죠."

20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박창성씨(51)의 단칸방 기온은 42도였다. 기상청이 발표한 같은 시각 서울 기온은 32도. 박씨는 "겨울엔 춥고 여름엔 푹푹 찌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500여가구가 몰려 있는 쪽방촌 주민들은 폭염에 지쳐 있었다.

신현수씨(51)는 "지붕이 얇은 슬레이트라 열기가 그대로 방 안에 전달된다. 선풍기를 틀어도 덥고 새벽이 되어야 조금 잘 만하다"고 했다.

화재로 거처를 잃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판자촌 주민들이 20일 차량에 설치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골목길엔 장마기간 눅눅해진 이불이며 옷가지들이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 골목 그늘에선 몇몇이 깔개를 깔고 누워 있거나 벽에 기대 쉬고 있었다.

강후식씨(60)는 골목에 놓인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방에 깔았다. 방이 좁아 따로 이불을 개어놓을 공간이 없어 골목가에 공동으로 '이불 창고'를 만들었다고 했다. 강씨는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쪽방촌 사람들의 안부를 묻지만 변한 건 없다. 이젠 귀찮을 뿐"이라고 말했다.

진명월씨(86)는 2층 쪽방에 살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 오르내리기엔 위험해 보였다. '더위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물어보나마나한 소리"라고 기자를 타박했다. 골목도, 방 안도, 2층 쪽방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도 비좁아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듯했다. 방문과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골목이 좁고 구부러져 바람이 부는지 느낄 수 없었다.

박희태씨(54)는 "더워서 중간에 잠을 깨면 역앞에 나간다.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취해서 들어와야 아침까지 안 깨고 잘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불이 난 강남구 개포동의 판자촌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도 폭염에 지쳐 있었다.

잿더미가 된 벌판 한쪽에 컨테이너박스를 쌓아올려 만든 '마을회관'과 천막 등 임시 거처에는 바람 한 줄기 불지 않았다.

주민 김모씨(46)는 "남자 30여명이 임시천막에서 잔다"고 했다. 냉방기구라곤 소형 선풍기 3대뿐이었다. 김씨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쓰레기 더미에서 악취가 풍기고 모기와 파리가 꼬여 잠을 이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1층에서는 여성 주민 50여명이 밤마다 다닥다닥 붙어 잠을 잔다. 천장에는 선풍기 2대가 달려 있었다. 주민들은 "제대로 못 씻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라고 했다. 얼마 전 간이샤워장을 만들기는 했지만 주민 100여명이 함께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화장실도 남녀 각 1개뿐이다.

신모씨(45)는 "아이들은 날이 더워지면서 땀띠가 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모씨(59)는 "어른들이야 어떻게 지낸다 해도 아이들만큼은 조금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마을회관 3층에선 10명의 아이가 지내고 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신지혜씨(25)는 "아이들이 선풍기를 틀고 자도 땀이 난다고 말한다"고 했다.

더위만큼 주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조모씨(58)는 "날이 덥고 모기가 득실거리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언제 용역이 올 줄 모르니 마음 놓고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신모씨는 "빨리 내 집을 짓고 들어가 살았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에 모두 상처가 났다"고 했다.

불볕더위 속에서 송모씨(62)는 장작불을 때 밥을 짓고 있었다. 주민들이 함께 먹을 밥 100인분이었다. 찌는 더위에 자는 일도, 먹는 일도, 살아가는 일도 고역이었다.

< 정희완·주영재 기자 roses@kyunghyang.com >

출처 :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10720214824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