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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재난 속 '생존자'였던 구룡마을 주민들이 또다시 죽음의 위협에 내몰리지 않도록.

많은 분들이 구룡마을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구룡마을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았습니다. 근처 재건마을에서 공부방 자원활동을 하면서 강남에 판자촌 4곳이 있고, 그 중 하나가 구룡마을이라는 이야길 들었거든요. 재건마을과 가까운 거리였는데도 갈 기회가 많진 않았습니다.

수해 피해 소식을 듣고, 구룡마을에 가서 필요한 지원 등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가기로 했습니다. 서울기본소득당 위원장인 저와 국회 행안위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 용혜인 의원, 그리고 두 명의 당원과 함께 며칠 전 구룡마을을 찾았습니다.


신지혜(가장 왼쪽), 용혜인(가운데), 구룡마을 주민(오른쪽)



마을 입구에 있는 10여 년 전 수해를 겪고 쌓았다던 방둑도 무너져 있었고, 무섭게 휩쓸었던 물길이 마을 골목골목에 남아있었습니다. 포털사이트 지도에 나와있진 않지만, 구룡마을 아래와 옆엔 물이 흐릅니다. 기록적인 폭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물가 근처의 집들이 수해 피해를 가장 많이 입었습니다.


마을입구. 방둑이 무너져있다.



물이 흘러야할 곳에 큰 나뭇가지 등이 가득 찼고, 폭우 때문에 불어난 물은 물가에 있는 집들로 들이닥쳤습니다. 판자로 만들어지고, 천장도 낮은 집에 들이닥친 물은 너무나 위험했습니다.


집 뒷편에도 물이 흐르는 모습. 뒷편에서도 물이 쏟아졌다.

침수 피해로 인해 가구와 가전은 간데 없고, 바닥은 진흙으로 가득 찼다.


그 위험한 상황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주신 주민도 계셨습니다. 집 앞뒤로 물이 들이닥쳐 놀라 집 밖으로 나오니, 물길도 아닌 골목에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에 살고 있는 80대 할머니가 물 속에 잠겨 떠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순간 할머니를 꽉 붙잡아 겨우 살아남았다고 하셨습니다. 불어난 물보고 수영도 못해서 너무 무서웠는데, 어디서 용기가 나왔는지 할머니를 구하게 되더랍니다.


80대 할머니가 혼자 사시던 집안. 옷가지와 이불 등이 진흙 섞인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집안의 물이 아직 빠지지 않았다.



‘이재민’이라는 말 속에 잘 드러나지 않은 ‘생존자’의 이야기였습니다. 10년 마다 큰 물난리를 세 번이나 겪은 주민은 나이 들수록 수해가 무섭다고 했습니다. 집 안이 진흙으로 가득 찼는데 이걸 다 덜아내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 자체도 너무나 힘이 부친다고요. 저희가 갔을 때 때마침 빨래차가 와있었지만, 젖은 빨래를 빨래차 있는 곳까지 가져갈 힘이 없다고요.

30년의 역사를 가진 구룡마을은 주민의 평균 나이도 그만큼 높습니다. 또, 30년은 폭우만 오면 수해 피해 입는 구룡마을의 상황을 바꾸지 못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희를 만난 주민들은 수해 피해 상황뿐만 아니라 지난 30년동안 달라지지 않은 판자촌 구룡마을의 상황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개발계획 이야기가 나온 뒤 SH가 상주하는 컨테이너 박스가 생기고, 강남구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구룡마을 밖으로 주민을 이주시키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1000 세대가 넘게 거주하는 구룡마을은 주민의 상황도 제각각기도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대주택으로 이주 설득만 열중하는 것이죠. 2년마다 재계약하고, 보증금뿐만 아니라 매달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나가라’고만 하니 변화가 없었습니다.

주민 삶을 존중하지 않은 태도는 수해 복구 과정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길 막은) ‘저기 좀 치우는 걸 해달라’고 요구하니, ‘그러니까 이주하라니까’ 등 주민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주민들을 두 번 울리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수해는 주거취약계층에 더 깊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침수 피해로부터 ‘생존’했다는 말이 더 적절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이 피해는 정치권을 포함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같은 피해를 반복하면서도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죽어야만 반짝 관심갖고 생색내며 변화는 없었던 정치권의 직무유기가 또다른 이들을 죽음의 위협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번엔 ‘일상 회복’을 넘어서 근본적 대책을 논의하고 실행하는 계기가 되도록 기본소득당도 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