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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

[87년생 신지혜] 모바일 화면 뒤, 사람


'오늘은 꼭 병원 갈게요.’ 이 한 문장으로 일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 ‘다 들어줄 개’의 상담원이다. ‘다 들어줄 개’는 청소년 자살률을 줄이고자 교육부에서 마련한 사업이다. 부모나 학교 등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청소년이 ‘나 위험하다’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한 것이다. 국내에서 다수 수상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상담 영역에서 ‘모바일’ 체계 구축의 성공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모바일 상담 성공 원인은 명확했다. 상담원을 비롯한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시범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애정을 갖고 ‘청소년 살리기’ 공익에 집중하며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에 익숙한 세대에게 상담 접근성을 높인 것이 큰 성과였다. 자원봉사자를 제외하고 30명도 되지 않는 상담원들이 2018년 9월부터 2020년 6월까지 69만7390명의 이야기에 촉을 세운 덕분이었다.

하지만 모바일 화면 뒤 상담원이 감당해야 하는 몫은 만만치 않다. 보통의 상담처럼 예약도 없다. 상담이 시작된 순간 채팅으로 상담하는 상대방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오로지 문자 대화를 통해서만 파악해내야 한다. 장난으로 말을 건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레짐작하면서 한 글자도 허투루 흘려보낼 순 없다. 표정과 몸짓 없이 보내는 위기 신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 청소년은 부모로부터 폭력위협을 당하는 와중에 숨어서 위기를 알리고, 한 초등학생은 부모가 다투는 사이 두려워 말을 건네 온다. 또 다른 이는 오늘도 자해했다고 상담을 요청한다. 누군가는 한강에서 연락해와 경찰과 긴급히 연계하기도 하고, 집을 나온 청소년에게 당장 찾아갈 수 있는 기관을 연계하며 위기 신호에 응답한다.

손가락 끝으로 가장 적절한 공감과 위로의 언어를 찾아 전하고, 위기상황에서 지원을 연계하는 모바일 화면 뒤 사람들. 코로나 영향으로 상담이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일분일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담을 연이어서 하는 것도 기꺼이 감내한다. ‘오늘은 자해 안 할게요’ ‘용기를 줘서 고마워요’ 말 한마디에 보람을 얻고, 생명을 구했다고 안도한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할 최소한의 방어벽은 모래 위 지어진 집처럼 언제 쓰러질지 모를 만큼 부실하다.

20명 남짓의 재택상담사는 4시간씩 6교대로, 이들의 교육과 위기상담을 함께 하는 선임상담사 6명은 8시간씩 3교대로, 명절이나 공휴일도 없이 24시간 상담이 계속된다. 인원 부족으로 휴가는 물론 휴식도 딴 세상 얘기일뿐더러, 연속된 위기상담으로 고갈된 힘을 충전할 여유도 없다. 모바일 너머로 연결된 청소년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길 바라며 그들은 오늘도 접속 중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코앞까지 닥쳐온 공포는 고용불안이다. 손끝으로 공감과 위로의 언어로 내일도 살아갈 희망을 건네는 이들의 공포를 걷어내야 한다. 협력업체에 책임을 미루는 대신 이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에서 일하는 국민 역시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교육부가 변해야 한다. 변화의 키를 쥔 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 사업 책임부서의 최종결정권자,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나서야 할 때다.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신지혜

출처 : 고양신문 [87년생 신지혜] 모바일 화면 뒤, 사람
http://cms.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2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