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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

[오마이뉴스] 판잣집에서 임대주택 옮기라는데, 왜 반대하냐고?

판잣집에서 임대주택 옮기라는데, 왜 반대하냐고?

오마이뉴스| 입력 11.07.28. 11:51 (수정 11.07.28. 18:41)

 

[오마이뉴스 문해인 기자]

27일로 화재 45일째를 맞은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폭우가 몰아치는 악천우 속에서도 이곳은 제법 평온한 모습이었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던 지난 6월 25일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거친 화재의 흔적은 많이 정리돼 있었다. 판잣집 사이로 위태로워보이기는 해도 빗물은 잘 빠져나가고 있었고, 잿먼지를 날리며 수북이 쌓여 있던 화재 잔해들도 많이 치워져 있었다.

화재 45일째, 평온해 보이는 포이동 26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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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흥건한 포이동 266번지 화재현장.

ⓒ 문해인

이날도 어김없이 이곳 주민들은 다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포이동 인연 공부방 선생님 신지혜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 공부방은 다시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다.

"예전처럼 매주 월·수·금요일마다 공부방을 하고 있다. 오늘도 수요일이라 공부방을 하는 날인데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다."

포이동 인연 공부방은 2005년 겨울 이곳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사회당 학생당원들이 처음 만든 것이다. 현재 13명의 이곳 아이들이 30여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화재 이후 공간문제로 2주 가량 수업이 중단됐지만, 주민들이 공부방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면서, 지난 6월 마지막 주부터 수업이 다시 시작됐다. 신씨는 현재 11명의 아이들과 함께 마을회관 3층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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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잣집 사이로 보이는 포이동 266번지 마을회관.

ⓒ 문해인

- 그간 상당히 더웠는데 어땠나?

"더울 때에는 아이들이 밤에도 잠을 못 자더라. 그래도 얼마 전 두리반에서 에어컨을 사 주셔서 마을회관 3층에 설치했다."

포이동 266번지는 현재 각지에서 후원금과 물품을 지원받고 있다. 포이동주거복구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26일까지 모금된 후원금은 모두 9560만 원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5만 원 이하로 입금된 개인모금이다. 후원물품도 비누·샴푸 등 생필품, 쌀, 김치, 간식류 등 다양하지만 소박하다. 이곳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역시 우리 사회의 낮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한 주민이 말을 건넨다.

"여기 대학생들 힘이 반이어요. 대학생들 없으면 못 이라지…. 8년 째 저래 같이 하고 있는데. 오늘도 대학생들 많이 온다는데, 오면 아주 내가 그냥 업어주고 싶어."

이날부터 오는 29일까지 보건의료계 대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건강현장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박정재 민중철거민연대 연사국장을 만나 그간의 상황을 들어봤다.

"컨테이너 대안 아니다, 공동체로 살 수 있게 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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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 민중철거민연대 연사국장.

ⓒ 문해인

- 서울시·강남구 쪽과는 어떻게 얘기되고 있나?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주민들의 주거복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주거복구와 상관없이 병균이 우글거리는 화재잔해 쓰레기를 처리해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해주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화재현장에 40개의 컨테이너를 지어준다는 제안을 해 왔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컨테이너까지 해 주는데 왜 거부하냐'고 하지만 컨테이너를 주민들에게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빌려주겠다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컨테이너는 설치해도 나중에 아무런 법률적인 절차 없이 다시 철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컨테이너 안을 받아들일 경우 공대위의 개입 없이 서울시·강남구청과 주민들 단독으로만 협의하자고 한 조건에 있다. 한 마디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협의를 기다리며 몇 년 동안 주민들을 '깡통'에서 살게 하겠다는 이야기다. 화재피해를 입은 59가구를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진행했는데 10가구가 찬성했고, 49가구가 반대해 컨테이너 안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재 이곳 주민 96가구 중 75가구가 화재 피해를 입어, 나머지 21가구와 마을회관 등에 나눠 생활하고 있다. 컨테이너 40개로 옮길 경우 현재보다 넓게 생활할 수는 있겠지만 한 컨테이너에 두 세 가족이 살아야 되는 등 현 주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 강남구가 내놓은 임대주택으로의 이전을 원하는 주민들은 없나?

"주민총회에서도 얘기했지만 (정부를 대상으로) 싸우는 것이 두렵다면 임대주택을 원하는 주민들을 막지는 않는다. 주거문제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대주택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토지변상금 때문에 보증금마저 차압당하는 부분을 어떻게 감수할 것인가? 대신 임대주택으로 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주민들은 마을 집행부가 나서서 구청에 '이 주민들은 임대주택으로 갈 테니 변상금을 탕감해 달라'라고 전달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강남구청은 토지변상금 얘기는 없이 임대주택 얘기만 하고 있다."

토지변상금 문제 관련 강남구청 도시계획과 이임원 주무관은 "임대주택으로 이전한다고 토지변상금이 없어지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임대주택 보증금을 변상금 명목으로 압류하지는 않는다"며 "이는 주민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그렇다면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뭔가?

"땅까지 달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화재가 나지 않게 어느 정도는 살 만하게 만들어서 무상으로 (이곳에서) 살게 해 줘야 한다. 무조건적인 임대주택 이전은 공동체를 훼손할 뿐이다. 아니면 공동체를 훼손시키지 않고 통째로 옮기는 방법도 있다. 은평구 쪽에 한옥마을을 짓는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아파트가 아닌 집단적인 마을을 형성해 줘야 한다. 강남구에 명품거리를 만든다고 하는데 포이동 266번지를 조금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 생각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한테 투기하지 말라고 하면서 구청 자체가 여기에 뭘 지어서 비싸게 팔까를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이곳은 포이동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사람연대의 행동하는 의사회, 포이동 인연 공부방 등이 함께하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대체로 노인이 30%에 이르고, 미성년자의 40%가 조손가정이거나 한 부모가정이다. 이곳이 해체될 경우에 받을 타격은 단순히 집을 잃는 문제 이상이기 때문에 '포이동 공동체'를 보존하자는 의견이 많다.

- 지난 22일 화재현장을 둘러싸고 있던 철벽을 주민들이 자진철거했다고 들었는데?

"화재 이후 200만 원을 들여 철벽을 설치했는데, 첫째로는 화재 이후 밖에서 마을이 다 들여다보여서 주민들이 밥 먹고 하는 모습을 밖에 보이는 게 싫어서였다. 둘째로는 화재잔해 쓰레기들을 바깥 쪽에 몰아넣어 놔서 학생들 등·하굣길, 직장인들 출·퇴근길에 냄새가 날까 봐였다. 셋째로는 주거복구를 감시하기 위해 강남구청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들어올까봐 무서워서였다.

그런데 강남구청이 시민들에게 '주민들이 화재잔해물을 못 가져가게 하고 안에서 집을 지으려고 철벽을 쳤다'며 왜곡해 알리고 지난 19일 공문을 보내 '22일까지 철벽을 철거하지 않으면 형사고발 등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전했다. 우리는 철벽의 목적이 '화재잔해물을 못 가져가게 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가림막일 뿐이며 화재잔해를 처리하지 않는 강남구청의 행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22일 아침에 철벽을 자진철거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 45일 째, 철벽을 철거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재잔해는 치워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주무관은 "구에서 화재잔해 처리를 위한 예산이 부족해 서울시에 예산지원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용역배치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무허가 건물을 짓겠다고 주장해서 토지관리를 위해 현장을 순찰·관리하는 직원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 같은 날 열린 촛불문화제 때 붙인 희망리본을 떼라고 했다는 얘기는 뭔가?

"22일 아침 급하게 철벽을 철거하고 저녁에 진행한 촛불문화제에서 희망리본달기 행사가 있었다. 마을에 있던 오래된 은행나무를 기점으로 철벽이 있던 자리에 달았는데, 무슨 이념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지지방문해준 분들과 주민들이 함께 포이동 재건마을의 희망을 기리며 달았는데 그걸 (강남구청이) 떼라고 하니 유치하기 짝이 없다. 마을 진입로에서 방범을 서는 분이 용역들이 리본을 떼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더 웃긴 것은 (강남구청이) '화재잔해를 치워줄 테니 희망리본을 떼라'고 요구해온 것이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단 희망리본이 화재잔해 쓰레기보다 더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희망리본은 주거복구가 끝나서 안정적인 삶을 되찾더라도 포이동 재건마을을 지지해준 분들을 기리는 기념물로 남길 생각이다."

이 주무관은 이에 대해 "그런 것 하는 것 (리본 달기) 자체가 불법"이라며 "(리본에) 구청에 대한 원색적인 욕설이 있어서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박 연사국장은 "포이동은 한 가지가 풀리면 모든 게 풀리는 공동체"라며 "강제이주 사실만 인정하면 토지변상금이 없어지고, 토지점유권이 인정된다"고 강조하며 말을 맺었다.

강남구 한복판 판잣집, 당당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

때마침 건강현장활동을 오기로 했던 학생들이 도착했다. 보건의료학생 여름건강현장활동 '매듭'은 아주대 의대 등 보건의료계 전공 대학생들이 '사회적 건강권'을 주제로 여름방학마다 건강현장활동을 가는 모임이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고려대병원 노동조합·서울대병원 노동조합·포이동 266번지·부산 고리 핵발전소를 도는 일정이다. 마을회관 2층에서 포이동 266번지에 관한 영상을 보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했다.

마을회관에서 빠져나와 마을주민 서미자(55)씨를 만났다. 서씨는 두 자녀와 살던 집이 화재를 입어 현재 두 자녀는 마을 밖으로 나가 친구 집 등에 살고 있고 서씨만 마을에 남아 이웃집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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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266번지 주민 서미자(55)씨.

ⓒ 문해인

- 포이동 266번지에서는 언제부터 살았나?

"30년 전 자활근로대로 들어왔다. 그때는 여기가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나무 해 오고 흙 파서 집 짓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집 지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 화재 당시는 어땠나?

"그때 아들은 집에 없고 딸과 둘이 있었는데, 딸이 화장실에 다녀오다 목공소에 불이 난다고 했다. 그 불이 우리 집까지 오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순식간이더라. 당시 신고 있던 슬리퍼 정도 빼고는 모두 다 타버렸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구호물품으로 들어온 것이다."

포이동 266번지는 화재 이전부터 슬레이트와 나무판자, 천막을 얼기설기 쌓아서 만들어진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화재위험이 컸던 곳이다. 온통 타기 쉬운 물질들로 이뤄진 판자촌에서 2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고 있어 작은 화재라도 이번과 같은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이 집에는 현재 누가 살고 있는가?

"이 집은 원래 부부가 사는 집인데, 지금 집주인 남편은 회사에서 숙식하고 있고 집주인 아내와 나를 포함해 4명의 여자 주민들이 같이 살고 있다."

- 지금 가장 힘든 것이 뭔가?

"아무래도 주거문제다. 두 달 동안 아들, 딸과 헤어져서 살고 있으니까. 집도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이니까 불편하면서도 미안하고. 판잣집이어도 내 집에서 살 때는 마음이 편했는데. 그리고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우울증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다. 밖에 나가서 일해야 하는데 자꾸 누워있게 된다."

30년 동안 살던 집이 모두 타버린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래도 서씨는 "나보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많다"며 다른 주민들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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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잣촌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려가는 모습.

ⓒ 문해인

- 폭우로 인한 피해는 없었나?

"그나마 어젯밤에 남자 주민들 몇 명이 하수도를 손 봐서 비가 잘 내려가고 있다. 만약 어제 손보지 않았으면 모두 침수됐을 것이다."

포이동 266번지 바로 옆 양재천이 불어난 것을 보며 가슴을 철렁했던 기자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 아침·점심·저녁을 다 함께 먹던데 순번은 따로 있는 건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5조까지 꾸렸다. 각 조마다 10명부터 20명 정도로 다양한데 한 조가 밥을 하면 다른 한 조가 청소를 하는 식이다."

-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구청에서는 (조철순) 위원장이 주민들이 임대주택에 못 가게 막는 거라고 말하는데, 구청에서 준다는 지하임대주택에 가 봤자 변상금 때문에 압류당하고, (임대료를 내기 위한) 융자도 못 받고, 생활터전(고물상)도 잃으니까. 여기 사는 사람들의 70%가 재활용을 하며 사는데 뿔뿔이 흩어지면 살 수가 없다."

서씨는 임대주택 자체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화재 10일 후에 50대 남자 주민 한 명이 반지하 임대주택으로 갔었다. 그런데 몸도 불편하고 해서 못 살겠는지 지금은 친구 집에서 살면서 임대아파트를 신청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남자 혼자도 못 사는데 애까지 딸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임대주택으로 가겠는가."

현재 한 명의 주민이 또 다시 임대주택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강남구에 따르면, 임대주택은 송파구 마천동의 한 다세대주택이며 입주는 다음 주로 예정돼있다. 이 주무관은 "주민이 임대주택을 계약하기 전에 주거여건과 동네를 미리 확인하고 마음에 들면 신청하는 것"이며 "보증금과 임대료는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 판자촌에서 자란 자녀들의 방황은 없었나?

"아들이 초등학생 때 항상 제일 먼저 등교하고 제일 나중에 하교하기에 '왜 이렇게 일찍 가고 늦게 오냐'고 물었더니 '학교에 먼저 가서 문을 여는 게 좋아서 일찍 가고 친구들이 청소를 늦게 해서 늦게 온다'고 하더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일기장을 보니 친구들이 (판자촌에 사는 것을) 놀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다니지 않는 길로 돌아서 오고 가느라 그렇게 일찍 가고 늦게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기 밑에 당시 담임선생님이 '그런 건 죄가 아니니 당당하게 살아라'라고 써 주셨더라. 그게 초등학교 4학년 때인데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힘을 얻었는지 중학교 정도 되니까 친구들도 집에 데려오고 했다. '이제는 안 창피하냐'고 했더니 '여기서 산다고 무시하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하더라. 지금 아들이 33살, 딸은 27살인데 아들은 지금 이 나이까지 담배도 술도 안 하고 딸도 또래들처럼 사치 안 부리고 한다. 요즘도 비 많이 오니까 오지 말라고 해도 매일 저녁마다 퇴근길에 들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산다는 강남구 한복판의 판잣집에서도 서씨는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다 커버린 자녀들을 떠올릴 때는 연신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인터뷰 중간에도 서씨는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며 밝은 모습이었다. 연이은 폭염과 폭우 속에 가장 낮은 곳인 포이동 266번지. 이곳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서로 의지 할 수 있는 가족과 이웃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출처 : http://m.media.daum.net/m/media/economic/newsview/20110728115117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