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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신지혜의 정치에세이 7] “11살 될 때까지 지혜이모랑 놀거야”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포이동 재건마을에 있는 공부방을 운영할 때 몸으로 배우기도 했다. 포이동 재건마을에 화재가 났을 때는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이전에 활동했던 교사와 동료시민들의 힘이 없었더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화재 경험으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온 마을이 되어주고픈 아이가 있다.

태어난 지 10개월이 채 되지 않아 만났던 아이, 효준이는 직장동료 은희언니의 아들이었다. 육아휴직 중이던 언니는 깨어있는 모든 시간동안 아이 돌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일도 다시 시작해야하니 맡길 어린이집을 찾아볼까 했지만, 불안함이 몰려왔다. 뉴스에는 어린이집 학대 소식이 연일 보도되는데, 말도 못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마땅한 대안을 찾을 때까지 언니는 효준이와 함께 출근을 시작했다. 사무실 바닥에 어린이 놀이방 매트를 깔고, 매트 주변에 안전울타리를 세웠다. 효준이는 거기서 놀고, 우리는 사무실에선 평소처럼 일을 했다. 효준이는 돌이 지나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지만, 하원하면 다시 사무실로 오는 때가 많았다. 평소에 아이랑 노는 걸 좋아했던 나는 효준이와 노는 시간이 많았고, 효준이가 밥먹을 때마다 옆에 앉고 싶다고 찾는 이모가 됐다.

다섯 살이 된 효준이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숫자를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효준이에게 물었다. 어릴 때야 이모들이 좋아서 잘 놀겠지만, 효준이가 더 크면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노파심이 들어 생각난 질문이었다.

효준아, 효준이 몇 살 됐을 때까지 이모랑 같이 놀거야?”

.... 열한 살!”

효준이가 다섯 살이니까 열한 살이 되려면 육 년 밖에 남지 않았다. 생각보다 몇 년 남지 않은 시간에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가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

 

효준아, 혹시 효준이가 아는 제일 큰 숫자가 뭐야?”

“11”

, 효준이가 아직 숫자를 잘 몰라서 그렇게 대답했구나.’하는 안도감이 드는 한편 뭉클한 감동이 몰려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높은 숫자의 나이가 될 때까지 함께 놀겠다는 대답은 효준이가 사는 내내 나와 놀겠다고 대답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은희언니가 효준이 동생을 임신했다. 어느 날, 언니는 입덧이 심해져 유치원을 마친 효준이를 데리러 가기가 어렵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했다. 임신 후 다른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 두었지만, 우리는 직장동료이기 전부터 자원활동을 하며 친했기 때문에 여전히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옛 동료가 된 언니는 평소 타인에게 부탁하는 걸 민폐라고 여겨 잘 부탁을 하지 않았다. 나와 또 다른 동료인 삼미언니는 서로를 바라보며, 지금이 우리가 나설 때라고 확신했다.

오후 5, 유치원 마치는 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갔다. 출입문 벨을 누르니 유치원 선생님이 나와 누굴 찾는지 눈으로 묻는 것 같아 효준이 데리러 왔어요.’라고 먼저 대답을 했다. 잠시 후 입구로 나온 효준이는 오잉? 이모가 왔네?’ 말하며 신기해하면서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효준아, 오늘 엄마가 몸이 조금 안 좋대서 이모가 대신 왔어. 이모랑 삼미이모랑 같이 식당에서 저녁 먹고 집에 가는 거 어때?”

~! 좋아~!”

효준이 특유의 경쾌한 듯 단호한 음색의 대답이었다. 삼미언니의 차를 타고, 한 접시에 스테이크, 감자튀김, 샐러드를 예쁘게 담아주는 식당으로 가서 맛있게 밥을 먹이고 집에 데려다 주었다. 엄마 없이 이모들이랑 하는 외식이 처음이었지만 낯설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온 서로에 대한 신뢰를 느꼈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몇 번 유치원에 데려다주거나 데리고 오는 일들이 생겼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이런 걸까? 친정과 시댁이 먼 언니에게 그리고 효준이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를 충만하게 했다.

며칠 전, 효준이의 유치원 졸업식에 든든한 두 이모가 함께 했다. 생애 첫 졸업을 축하하며, 그리고 다음 졸업식에도 함께 하기를 기대하며. 코로나19바이러스 여파로 입학이 연기되는 바람에 언니의 독박육아 기간이 길어져버렸다. 두 이모가 잠시나마 옛 직장동료이자 효준 엄마의 독박육아탈출을 돕기 위해 조만간 찾아갈 날을 잡으려 한다. 함께 살기 위해서 서로를 돌봐야하니까.

#어느__정치가_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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