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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신지혜의 정치에세이 6] 남편 대신 고양이와 산다.

어떻게 고양이를 키우게 되셨어요?”

내 일상에 고양이가 가득차고 난 뒤 새로운 질문을 받게 됐다. ‘늦게 퇴근하기도 하고, 내 한 몸 거두기도 어려워서 집에 누군가를 들일 생각이 없다고 늘 주변에 설명하고 다녔다. 그러니 평소 나를 알고 지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고양이 입양은 정말 별안간 내가 해버린 결정이었다.

국민임대주택에 당첨된 게 201810, 그런데 입주는 20197월 이후에야 가능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새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국민임대주택에 당첨된 이후 삶이 급속도로 변했다. 2018년 말, 8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뒀다. 대학생일 때부터 발달장애인 만나는 자원활동 하다가 대학졸업 후 직장으로 일하던 곳이었다. 고민과 숙고 끝에 일을 그만둔 건 정치에 전력을 다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이사를 앞둔 여름이 왔다. 그 때 나는 기본소득당을 창당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갖춰진 곳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차근차근 새롭게 모든 것을 세우는 일이 창당이었다. 당원을 모집하고, 지역체계를 갖추면서, 핵심정책을 구상하고, 홍보전략을 세우는 모든 일들을 해야 했다. 마음은 급하고 몸도 바쁜데, 돌이켜보면, 이 시간이 여태까지 내 삶에서 가장 붕-떠있는 것처럼 느껴진 시간이었다. ‘정말 창당 될까?’ 불안한 마음이 내 몸을 허공으로 띄우는 것 같았다. 불안함 마음을 타고 내 몸도 날아가 버릴까봐 다른 생각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이사하면 어떤 변화를 주지?’ 마침 이사가 코앞이었고, 창당 외 딴 생각으로는 이사만큼 적절한 게 없었다. 쫓겨나지 않고 30년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변화를 주고 싶은 게 많았다. 언제 결혼할지 모른다는 가족의 기대 때문에 10년이 넘는 내 자취의 흔적은 모두 중고였다. 20년 정도 된 가구와 가전제품도 이참에 다 바꾸고, 가구배치도 모두 다르게 할 참이었다. 가구와 가전제품 고민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족을 들여 볼까?’ 하는 생각은 빠르게 실행으로 넘어갔다. 어차피 지금 사람을 가족으로 맞을 건 아니니, 반려동물 입양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매일 산책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강아지를 입양할 자신은 없고, 자연스레 고양이 입양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처지가 됐다. 같이 창당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내가 고양이를 입양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고양이 키우는 것을 응원해줬고,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더 생각해보라고, 아니면 총선이 지나고 입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혼자 10년 넘게 살면서 누군가와 같이 살기 못 살겠다고 생각하면서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는 괜찮을까?’ 나조차도 나에 대해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포인핸드앱을 계속 들여다봤다. 고양시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하고 있는 고양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앱이었다. 그러다 한 고양이에게 반했다. 매일 밤 포인핸드 앱에서 그 아이가 입양을 갔는지, 아직 보호중인지 확인하고 잠들었다. 이사를 하고 동물보호센터에 연락을 해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반한 고양이 소개란에 꽃그림이 올라왔다. 자연사했다는 표식이었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살릴 수도 있었던 한 생명을 살리지 못한 것 아닌지 죄책감이 몰려왔다. 보호센터에서 나와서 병원에 가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다른 고양이처럼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망설이는 사이에 또 다른 생명도 없어져버릴 것 같았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 일은 계속 해야 했다. 때마침 내가 주목하고 있던 사안이 기후위기였다. 우리에게 이미 남은 시간이 10년밖에 없다고, 지금 당장 탄소배출량을 ‘0’에 가깝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멸종당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지금부터 탄소세걷어 기본소득으로 나누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자고 언론사에 기고를 여러 차례 하던 때였다.

그래, 어차피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멸종될지도 모른다면, 이 시간동안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보자. 까짓것 고양이 한 마리 먹여 살릴 능력은 되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멸종할지도 모를 기후위기가 내게 고양이 입양하라고 등 떠민 셈이 되어버렸다. 멸종당하기 전에 한 생명을 살리는 인간성을 지키고 싶어서.

보호센터에서 고양이를 입양하면 어느 동물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을까 검색을 하다 동물병원 블로그에 있는 한 게시물을 봤다. ‘양옹이를 입양하실 분을 찾습니다.’ , 글로만 봤던 묘연이라는 게 이런 걸까? 왠지 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던 고양이가 지오라는 새 이름을 가진 내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집사가 되었다.

*창당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도 있었고, 많은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창당을 막 결심하고 가장 혼란스럽고 맘이 바빴던 시간, 고양이 지오와 함께 살게 됐습니다. 그 시간의 다른 이야기는 최근 발매 예정인 #당만드는여자들 책에 에피소드로 실었습니다. 텀블벅에서 후원하고 책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밀어주기 클릭) https://tumblbug.com/partywomen

#어느__정치가_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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