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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신지혜의 정치에세이 4] 불편한 따뜻한 물 대신 맘 편한 찬물 샤워

 

 

2011년 6월 12일, 여전히 그 날 받았던 전화 너머 다급함이 기억난다. 마을에 불이 났다는 믿기지 않은 전화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택시를 잡아타 마을로 향했다. 대학 졸업하고 자원활동 했던 단체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됐다. 담당했던 자원활동팀 중 하나가 포이동 인연공부방이었다. 공부방은 강남 판자촌 마을에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작은 불씨도 마을 전체를 태워버릴 만큼 위협적인 곳이었다. 그런 곳에 불이 났다니. 택시 안에서도 안절부절,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화재는 심각했다. 96가구 중 75가구 전소. 공부방 학생 중 10명이 집을 잃었다. 꺼지지 않는 불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다 몇 시간이 지났다. 누구 하나 붙잡는 이가 없는데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절망하는 마을주민들과 평소와 다르게 조용히 주변을 살피는 공부방 학생들의 눈빛이 내 발길을 붙잡는 것 같았다. 다행인지 타지 않은 3층짜리 컨테이너 마을회관이 집을 잃은 주민들의 임시 집이 되었다. 1층엔 여성분들이, 2층엔 남성분들이 그리고 3층은 아이들과 나처럼 발길이 묶여 집에 가지 못한 샘들의 새로운 집. 두 달이 넘는 시간, 7평이 될까 하는 곳에서 12명의 공동생활이 시작됐다.

마을회관엔 화장실이 1층에 하나 2층에 하나, 딱 두 개. 10명 남짓 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는 게 문제였다. 처음엔 불타지 않은 다른 집 화장실을 쓰기도 하고, 근처 교회 다니는 분들이 남자 아이들, 여자 아이들 따로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가 화장실을 쓰게 해주시기도 했다. 따뜻한 물을 쓰기 위해서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해야했다.

12명이 함께 자는 좁은 방에서는 깊게 자는 게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은 따뜻한 물로 씻는 건 좋아하면서도, 남의 집에서 씻는 걸 불편해했다. 등교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난 뒤 마을 근처 목욕탕에 가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초등학교 다니는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며칠이 지났을까, 공동 샤워실이 생겼다. 마을 남자분들은 철거 일을 많이 하셨고, 컨테이너로 뚝딱뚝딱 공동 샤워실 만드는 것도 그 분들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3평정도 공간에 다섯 개 샤워기가 있었다. 아침엔 10분이라도 더 자려고, 밤엔 덩그러니 놓여있는 컨테이너 공동 샤워실에서 혼자 씻기는 무서워서 아이들은 함께 씻으러 가곤 했다.

“지혜샘~ 어젯밤에 우리 씻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누가 훔쳐보는 건가... 무서워요.”

12명 공동생활 할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친구의 말이었다. 공부방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동생들을 잘 이끌어준 친구가 처음으로 공동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아, 그래? 알겠어~ 샘이 너네 씻고 있을 때 문 밖에서 지키고 있을게. 그럼 괜찮을까?”

“네!! 고마워요, 샘!!”

밤 11시 정도 됐을까? 여자 아이들은 이제 씻고 자겠다고,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샤워를 하고 자겠다고 했다. 다섯 명의 여자 아이들과 함께 목욕바구니를 들고 마을회관 계단을 내려갔다. 아이들은 샤워실로 들어갔고, 나는 샤워실 앞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여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밤공기는 쌀쌀했다.

“아아아악~~~!! 차가워!!!!”

“으아아아악~!”

한밤 중 비명이 공동 샤워실을 뚫고 새어나왔다. 공동 샤워실의 단점은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찬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공기도 찬데 찬물을 온 몸에 끼얹으니 비명이 나올 법 했다. 대낮에 샤워하는 나도 헉 소리 내면서 씻곤 했으니 말이다. 5분 즈음 지났을까. 찬물에 적응했는지 비명은 더 나오지 않았다. 눈치 보이는 따뜻한 물 샤워 대신 찬물 샤워가 더 맘 편하다 했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비명 대신 웃음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찬 공기를 뚫고 따뜻한 달빛만 마을을 비추며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_날_정치가_찾아왔다.

#신지혜 #정치에세이 #기본소득당

 

*저는 포이동 재건마을에서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살며 주거복구를 도왔습니다. 폭력적인 두 번의 철거 뒤에야 샌드위치 판넬로 된 주거복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매봉역 4번출구 근처 포이동 재건마을이 존재합니다. 최근 발간예정인 #당만드는여자들 책에 재건마을에서의 또 다른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책발간을 위해 텀블벅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밀어주기’로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tumblbug.com/partywo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