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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신지혜의 정치에세이 3] “신지혜 선생님, 저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2020.02.12 “신지혜 선생님, 저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라는 낯선 호칭에 점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유치원, 고등학교 선생님도 아닌 인연맺기학교의 선생님. 대학 입학 후 장애어린이를 토요일마다 만나는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생도 됐는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 가족 중에 장애인도 많으니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이랑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합쳐져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교원자격증이 없어도 인연맺기학교에서 나는 선생님이라 불렸다.

 

매주 토요일 세 시간, 발달장애가 있는 내 짝꿍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색종이 자르는 것을 좋아하는지,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지 춤추는 걸 좋아하는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있는지 차근차근 알아갔다. 가장 어려운 건 소통이었다. 짧고 단순하지만 확실하게, 시간순서대로 쉽게 내 기분과 마음을 잘 표현해야 짝꿍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짝꿍이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면 그 이유를 찾아 기분을 풀어주느라 진땀을 빼면서 사람사이에 가장 기초인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자원활동이었다.

 

내 짝꿍이 결석을 하게 된 날, 난 민수 짝꿍을 하게 됐다. 그 친구 선생님도 내 짝꿍처럼 다른 사정이 생겨 결석했기 때문이었다. 민수는 열 살, 나는 스물한 살. 민수는 언어로 의사소통을 잘 하는 편이었고, ‘빨간 색으로 그릴까?’ 하면 파란 색으로 그릴 거예요!’ 대답하는 청개구리 같은 친구였다. 그림 그리기를 지겨워하는 민수와 어쩌다보니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됐다. ‘나중에 커서 뭐 되고 싶어?’라는 으른의 단골질문을 던졌고, 민수는 잠시도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신지혜 선생님, 저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우와~ 경찰? 그렇구나. 경찰이 왜 되고 싶어?”

그냥요. 너무 멋져요. 빨리 커서 군대도 가고 싶어요.”

“.........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면서도 민수를 슬쩍 쳐다봤다. 호들갑 떨며 물어봐놓고 반응이 시원찮은 선생님 때문에 혹시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행인지, 민수는 선생님이 왜 말끝을 흐렸는지 관심이 없었다. 민수가 평소와 달리 장난기 쏙 빼고 이미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경찰이 되고 싶고 군대 가고 싶다고 하니 말문이 턱 막힌 건 나였다.

 

민수와 미래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야외수업을 할 차례였다. 민수가 신발을 신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갔다. 수업장소인 수련관 밖을 벗어나자마자 민수는 내 손을 놓고 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친구를 잡으러 뛰어갔다. 혹시 넘어질까 불안한 시선으로 민수를 쫓는데도 조금 전 말문이 막힌 찝찝함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국회 앞에서 집회할 때 경찰을 봤을 텐데... 경찰이 멋지다고..?’

 

어느 날 우리 인연맺기학교 친구들이 학교 가는 대신 국회 앞에서 어머님들과 시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곳에 민수도 있었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하라고 울부짖는 장애인 부모들을 경찰이 둘러싸고 국회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 부모들은 경찰에게 막혀 절규하고, 아이들은 시끄러운 게 싫어 귀를 막고 있거나 주변 상황이 어떤지 관심이 없어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 곳에 있었던 민수는, 울부짖는 부모를 막은 사람들이 경찰이라는 걸 몰랐던 걸까. 아니면, 그래도 경찰이 멋져보였다면 그 상황을 무섭게 기억하지 않으니 다행으로 여겨야하는 걸까. 왜 나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민수의 대답이 혼란스러웠을까.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군대에 갈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걸, 민수에게 말할 순 없었다. 내가 지금 말하지 않는다 해도 아마 민수는 살아가면서 알게 될 것이 뻔했다. 그걸 알게 됐을 때, 민수는 장애가 있는 자신을 미워하게 될까. 찝찝함이 가슴 속 아릿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날, 민수 한 마디에 씁쓸해하면서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였다.

*민수는 가명입니다. 에세이 형식을 위해 이름을 적다 보니 가명을 쓰게 됐습니다.

 

#어느__정치가_찾아왔다

#기본소득당 #신지혜의_정치에세이

 

#인연맺기학교 #발달장애인 #자원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