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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신지혜의 정치에세이 5] ‘이사’와 결별할 수 있을까?

 

 

‘어? 고양시 국민임대주택 공고가 떴네?’

매일 들여다보는 LH청약센터어플에서 ‘고양’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주변보다 저렴하게 무엇보다 이사안하고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찾고 있었다. 그런 집은 국민임대주택 밖에 없었다. 재산도 없고, 소득도 적으니 신청자격은 충분했다. 문제는 고양시 공고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싸고 오래살 수 있는 집은 모두의 꿈이니 경쟁률이 치열했다. 당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은 고양시에 있는 국민임대주택에 지원하는 것이었다.

 

2년 집계약이 또 끝나가고 있는 여름이었다. 삐질삐질 새어나오는 땀처럼 언제 집주인의 연락이 올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계약 만료 3개월을 앞두고 발견한 고양시 국민임대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가 더없이 반가웠다. 생애 첫 국민임대주택 지원신청서를 넣으려고 준비를 시작했다.

 

고양시에 살고, 소득이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50%(3인가구 이하 일 때 270만 원 정도)도 되지 않으니 1순위 ‘우선’ 신청자 자격을 갖고 있었다. 고양시 거주 5년 이상, 주택청약납입횟수 61회 이상 등에서 최고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만30세 이상이라 1점을 받을 수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고 부모를 모시지 않는 내가 받을 수 있는 점수는 이게 끝이었다. 예전에 받을 수 있는 점수가 형편없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연습한대로, 클릭 몇 번으로 신청을 마쳤다.

 

며칠 뒤, 무난하게 서류제출대상자가 되었다. 소득도 없고, 재산도 없다는 것이 인증된 셈이었다. 어디에도 경쟁률이 나오지 않아 일일이 게시물을 확인하면서 서류제출대상자 수를 세어보았다. 내가 지원한 37제곱미터형만 해도 경쟁률이 15:1 정도였다. 이 경쟁률을 뚫고 당첨될 수 있을까. 아득한 맘으로 주민등록등본 초본을 뽑았다. 처음 태어나서 살게 된 집부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흔적이 3페이지에 걸쳐 남아있었다. 서류에도 남아있지 않지만 내가 살았던 모든 집들을 세어보니 열다섯 번째 집이었다. ‘이사 좀 그만하고 싶다.’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당첨발표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하필 네팔로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만약 당첨된다면, 2주안에 계약금을 마련해야 했다. 6백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확인해야 할텐데, 외국에선 접속이 잘 안될 게 뻔했다. 친구에게 공인인증서를 복사해주며, 발표가 나는 그 날에 꼭 확인해서 결과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발표가 났을 것 같은데...’ 결과는 너무 궁금한데 당장 확인할 길이 없었다. 친구는 메신저로 결과를 알려줬을 테고 와이파이가 있는 숙소에 도착해야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제발’을 백번쯤 소리 없이 외치면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친구가 보낸 메시지는 2개였다. 사진 하나와 메시지 하나. 떨리는 맘으로 메시지를 클릭했다.

 

“축하해”

나도 모르게 ‘꺄악’ 소리가 나왔다. 당첨 설렘의 순간을 함께 했던 네팔 숙소 룸메이트인 민아샘에게도 축하를 받았다. 가장 먼저 축하를 전해 준 두 사람 모두 ‘집’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축하를 받으면서도 괜히 머쓱했다. 기분 좋게 네팔 카트만두 숙소 한 침대에 누워 잠잘 준비를 하면서도 걱정 하나가 사라지지 않았다. 계약금 6백만 원, 어떻게 구하지?

 

은행에서 하는 전세자금대출은 계약금을 내고 작성한 계약서가 있어야 가능했다. 급히 돈 구할 데가 없다면, 당첨이 되도 계약을 못해서 집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모아둔 돈이 없어서 행복주택 지원은 꿈도 못 꾼다던 후배의 말이 순식간에 현실로 다가왔다.

 

#어느_날_정치가_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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