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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신지혜의 정치에세이 1] 내 기억 속 첫 번째 집

 

지혜야, 네가 무슨 초등학교 다섯 개나 다녔노. 네 개 아이가?”

명절이라 모처럼 만난 엄마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날 보며 말했다. 며칠 전 국회 정론관에서 했던 국회의원 출마 기자회견 이야기였다. 사촌동생이 TV 뉴스채널에서 출마 선언한 내 모습을 보고 동영상을 찾았고, 외할머니와 외가 친척들에게 돌아가면서 동영상을 보여준 탓에 엄마도 출마선언 영상을 본 뒤였다. 블로그에 버젓이 등록된 출마선언에 똑똑히 적혀 있는 열여섯 번 이사다섯 개 초등학교에 관한 이력을 엄마가 내게 묻고 있었다. 무엇이 진실일지 궁금해 하는 친척들의 눈빛이 엄마와 내게 집중되었다. 자연스레 부산에서 다닌 초등학교 이야기가 시작됐다.

엄마, 내가 하단초등학교 입학했는데, 2학기에는 괴정초등학교로 전학 갔고, 2학년 돼서는 다선초등학교로 전학 갔잖아.”

하단에서 괴정으로 이사를 갔었다고? 아이다~ 하단에서 바로 다대포로 이사 갔지.”

아니, 엄마. 하단초등학교에서는 1학년 7, 괴정초등학교에서는 1학년 4반이었다는 것도 똑똑히 기억난다니까?!”

다시 괴정으로 갔었다고? 방 한 칸 밖에 없는 데를?”

엄마는 여전히 그럴 리가 없다는 눈빛으로 천장을 쳐다보며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엄마가 다시 간 적 없다고 말하는 괴정의 그 집은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집이다. 세 살의 나는 평지의 삶보다 산동네 삶을 먼저 알았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다녀오던 길이 너무 가팔라서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쉬며 집으로 갔다. 몇 계단을 올라 끼이익 소리와 함께 초록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수돗가가 있었고, 수돗가 바로 옆문을 열면 세탁기와 세면도구가 있었다. 그 곳은 어릴 적 내 화장실이기도 했다. 수돗가 옆에 방 두 개와 작은 마루가 있었고, 방 하나에 할머니 그리고 다른 방 하나에 내가 살았다.

괴정 집은 산동네에 있었다는 것, 그 집에 살 때 동생이 태어나 동생과 깔깔 거리며 웃었던 기억과 함께 어렴풋한 또 다른 기억들이 있다. 동생을 들쳐 업은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다녀오던 길에 엄마도 나도 너무 졸려서 육교 계단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집으로 돌아온 일. 집이 너무 추워 동상에 걸려 간지러워 괴로워하는 내게 아빠 양말에 콩을 가득 채워 신겨 잠에 들었던 일. 어렴풋하지만 가난하고 젊은 부모가 아등바등했던 시간들이었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괴정 산동네를 벗어나 하단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가난하고 여전히 젊은 부모는 방 세 칸 아파트를 모두 사용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은 아니었지만 방 한 칸을 집 근처 대학에 다니는 학생에게 하숙을 쳤고, 가끔씩 삼촌이라 부르며 함께 놀았던 희미한 기억도 난다. 어릴 때 찍은 사진 중에서도 유독 하단 아파트 안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은 만큼, 우리 가족은 이 집을 좋아했던 것 같다. 좋은 이웃들을 사귀며 유치원도 다니기 시작했던 이 아파트에서는 딱 2년을 살았다. 내 기억대로 하단에서 다시 괴정 집으로 돌아갔던 기록은 후보등록 할 때 제출해야 하는 주민등록초본에 담겨 있었다.

부모님이 처음 분양받은 소형 복도식 아파트는 덜 지어졌고, 이사 갈 수 있는 날까지 계약 연장을 해주는 맘 좋은 집주인은 드물었다. 온가족이 참 좋아했던 하단 아파트를 떠나 내 기억 속 첫 집, 괴정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단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괴정초등학교로 전학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결국 다섯 개 초등학교에 다녀야만 했던 이유를 이제는 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세입자가 맘 편히 살 수 있는 시간으로 딱 2년만 허락하기 때문이라는 걸. 심지어 이마저도 두 살 터울 동생이 태어났을 무렵에서야 1년에서 2년으로 길어진 시간이라는 걸. 긴 시간동안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며 많은 추억을 차곡차곡 쌓은 친구가 드물다는 건 지금도 느끼는 아쉬움이다. 세입자가 걱정 없이 오래 살 수 있었더라면, 내 어릴 적 기억을 채우고 있었던 친구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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