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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신지혜의 정치에세이 9] 직장을 관두고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왼쪽) 신지혜가 반찬을 도시락통에 담고 있다. (오른쪽) 신지혜가 기본소득당 중앙당사에서 당원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고 있다.

 201812, 8년차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일이 지겨워서는 아니고, 관계 어려움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정치하려고, 애정하던 직장을 떠났다. ‘시민의 영역에서 하던 정치에서 전업 정치인으로 정치에 집중하려고 말이다.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던 노랫말 쥐꼬리만한 월급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삶을 시작한 것이다. 이 때 아니면, 언제 도전을 해보겠느냐고.

실업급여마저 끝나버린 2019년 여름, ‘기본소득당을 창당하기로 뜨거운 결정을 하면서도 오히려 머리는 차가워졌다. 모두 창당을 위한 자금을 내놓기로 했으니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야 했다. 퇴직금 까먹고 살 수 있는 시간도 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린 밀레니얼 시대에 맞는 정당 만든다고 젊음의 거리 홍대입구역 근처 사무실을 구한 것도 생활엔 도움이 안됐다. 왜 주변에는 싸고 맛있는 백반집이 없는 걸까.

점심, 저녁 하루 최소 6,000천 원 식사 두 끼. 최소 12,000원을 최소 25일이면 한 달 밥값만 30만 원이었다. 근데 창당하려면 사람도 만나야 하고 커피 한잔 술 한 잔이 더해지면, 오십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 수입이 없는데 빚까지 져버리면 이자 때문에 허덕일 게 뻔했다. 월세관리비, 대출이자까지 25만원, 대중교통 10만원은 고정비용, 어쩔 수 없는 비용이었다. 매달 빠져나가는 후원금 통장내역을 아무리 살펴봐도 다 어려운 곳뿐이었다.

으아아아아, 결국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인가밥값을 줄여야 했다. 이미 사무실에서는 나와 같은 처지 사람이 많아서인지 도시락파가 늘어가고 있었다. 이제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늘려야 하다니, 혼자 살기 시작한지 13년 만에 닥친 변화였다. 밥을 미리해서 잔뜩 얼릴 수 있게 반찬통을 주문하고, 포털에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도시락 반찬집에서 한 끼씩 해먹을 때는 주로 국이나 찌개를 해서 후다닥 먹었는데, 도시락으로 싸가긴 너무 어려웠다.

행복중심생협 온라인 주문이나 집 앞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시작했다. 밥새우와 애호박을 볶고,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들고, 제일 좋아하는 반찬인 멸치고추자박이도 만들어 반찬통에 담았다. 일주일에 세 시간 이상을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데 써야했다. 요리하는 시간보다 더 괴로운 건 반찬 또 뭐하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블로그검색에 나오는 예쁘게 담긴 도시락은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는데도 다음 메뉴를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귀찮게 느껴졌다. ‘반찬 고민할 여유도 없이 내 머릿속에 다른 고민이 가득한가.’ 그보다 일주일에 필요한 반찬의 양과 반찬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서 최대한 식재료를 덜 사고 반찬 가짓수는 늘리는 것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가사노동이었다.

가난해진다는 건 머릿속으로도 끊임없이 절약두 글자를 되뇌며 허투루 시간이나 자원을 낭비하지 않게 실행하도록 나를 조여야 하는 것이었다. 도시락을 싼다는 건 오늘 뭐 먹지?’ 고민하는 차원을 넘어서 반찬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큰 그림을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또 다른 차원의 가사노동이었다. 문제는, 나는 정말 가사노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좀 도시락을 재밌게 쌀 수 있을까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시작하다 불현듯 떠오른 게 있었다. 언젠가 집에서 요리를 자주하게 되면 신선한 제철 재료를 공급받아 요리를 해야겠다는 로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는 것! 언니네텃밭 1인 꾸러미 신청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이 기회인가? 2주에 한 번씩 두부1모와 유정란 6, 제철 채소 몇 가지와 반찬 1~2개가 집으로 배달 온다. 어떤 재료가 올지 모른다는 게 재미 포인트였다. ‘오늘 뭐 먹지?’ 질문은 이걸로 뭐 해먹지?’로 바뀌었다.

여전히 도시락 싸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많다. 가난하지만 내 삶에서 시간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락 싸는 결정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난한데, 요리할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삼각김밥에 컵라면을 주식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가난은 밥에 투자할 시간과 돈을 생각하게 한다. 정치가 밥 먹여주는 것이라면 건강한 재료와 요리부터 식사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정치로 응답해야하지 않을까.

 

*본격적인 정치인 라이프를 결심하고 창당하는 과정에서 제 삶의 달라진 부분이 참 많아졌네요. 그 시간의 다른 이야기는 최근 발매 예정인 #당만드는여자들 책에 에피소드로 실었습니다. 텀블벅에서 후원하고 책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밀어주기 클릭) https://tumblbug.com/partywomen

 

#어느__정치가_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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