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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신지혜

[신지혜의 정치에세이 10] 결국엔 우리가 바꾼다.

신지혜가 뒤돌아 사진을 찍었다. 등에 '결국엔 우리가 바꾼다' 글씨가 적혀있다.

에피소드 1 _ “그런데 말이야, 공직선거 후보로 계속 출마할 거면, 결혼하는 게 좋아~”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공직선거랑 결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하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 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 시간은 금방 찾아왔다. 처음으로 출마했을 때, 상가 곳곳을 돌며 명함을 뿌리면서 들었던 최초의 질문이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그런데 결혼은?’이거였으니 말이다.

공직후보자위치에서는 결혼했냐는 질문에 한 표가 아쉬워 결혼 생각 없어요대신 ...웃으며 대답하면, ‘어휴~ 정치하기 전에 결혼부터 해야지하는 답이 돌아왔다. 정치는 성인이 하는 거고, 결혼해야 성인이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당시 고양시에서 최연소 후보였기 때문에 최연소 후보라 결혼했냐는 질문을 받았는지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와 동갑이면서 다른 지역구에 출마한 남성인 친구는 결혼했냐는 질문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최연소, 청년에게 모두 하는 질문이 아니라 여성후보여서 가능했던 질문인 셈이었다.

지인이 내게 했던 계속 출마할 거면 결혼하는 게 좋다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제1 과제는 집안을 돌보는 일이고, 그 일을 잘 마친 여성이 하는 정치를 믿는다는 현실을 알려준 말이었다. 후보 대신 아가씨라 불리는 날도 많았고, 멋모르고 유권자에게 나눠드리는 명함에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가 밤늦게 술 취한 남성들 전화를 받았던 것도 여러 번이었다. 남성 후보였다면 밤늦게 술 취해서 전화를 했을까? 아니면, 전화해서 결혼 했냐 묻는 대신 정책에 대한 다른 질문을 했을까? 젊은 여자라서 겪는 무례함을 견뎌야 정치할 수 있는 걸까?

정치인으로서 어디까지 참아야하고, 어느 순간에는 참지 말고 항의해야한다는 선을 아직 정하지는 못했다. 어떤 대우에 대해 그 순간에 어떻게 했어야 했나?’ 내게 묻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정치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 세상을 만들기 전까지 청년인 비혼 여성이 정치한다는 건 많은 벽을 깨부수는 일을 결국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특한 청년 대신 당당하게 내 권리를 정치로 확장하는 시민의 삶을 선택한 대가라면, 기꺼이 짊어질 수밖에.

 

에피소드 2 _ “언니도 같이 찍지 않을래요?” 새해 첫 날, 기본소득당 후보출마를 결심한 몇몇이 스튜디오를 대여해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여러 컨셉의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데, 민주가 말했다. 요즘 로망 중 하나가 몸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어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이왕 사진 찍는 김에 자신은 그 사진도 찍을 것이라면서 같이 찍지 않겠냐고 물었다. 여성의 몸을 성적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낙인찍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고 싶지만, 그런 취지의 사진을 내가 직접 찍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단체사진 촬영이 끝나고 민주는 이미 화장실로 들어가 탈의를 하고 립스틱으로 등에 글씨를 적고 있었다. 낮부터 시작한 촬영은 어느 덧 밤 아홉시를 넘긴 상황이었고, 민주를 혼자 두고 먼저 집에 가기는 석연치 않았다. 무엇보다 내 몸에 메시지를 쓴 사진을 내가 먼저 찍겠다고 결심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텐데, 용기를 내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옷을 갈아입는 혜인에게 혹시 민주가 말하는 사진을 찍을 생각이 있냐고 물었더니, 혜인은 별 망설임이 없이 그럼 셋이 같이 찍을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웃옷을 벗어버리고 쓰고 싶은 메시지를 등에 적어 사진을 함께 찍었다. ‘결국엔 우리가 바꾼다.’ 그리고 또 용기를 내 이 메시지를 전한다. 내 안의 금기를 넘어 찍었던 이 사진처럼, 바꾸고 싶다, 이 세상을. 아니, 바꿀 것이다.

 

*오늘 3.8 여성의날을 마무리하며, 약속한 10편의 정치에세이를 마무리합니다. 많은 분들이 정치에세이를 응원해주셨어요. 덕분에 이것저것 바쁜 와중에도 정치에세이 10편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 정치에세이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기어이 창당까지 하고만 세 여자의 에세이, ‘당만드는여자들에서는 창당과정에서 세 여자가 함께 보낸 시간이 녹아있습니다. 그 시간들을 거쳤기에 몸에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함께 찍겠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만드는여자들텀블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직 프로젝트 밀어주기를 못하신 분들은 얼른 신청해주세요! 3월 안에 책이 당신의 손에 배달됩니다.

https://tumblbug.com/partywomen

 

#어느__정치가_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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