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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하루

11월14일, 그곳엔 우리가 있었다.

11.14, 그곳엔 우리가 있었다.

 

 

노동당

 

날씨마저 스산했던 그 날,  정부가 국민을 으로 대했던 그 날에 나도 그 곳에 있었다. 시청광장에서 광화문으로 민중총궐기를 위해 이동한지 채 20분도 지나지 않아 종로구청 입구에서 우리는 차벽을 마주했다. 경찰 차벽을 마주한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물대포는 등장했다. 카메라가 달려있는 물대포는 각도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살상무기였다. 여기 저기,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에게 직사하는 물대포에 아파하는 소리가 즐비했다. 물에 뭘 그렇게 섞었는지, 너무 많이 뿌려서 바닥에 고인 물은 새하얀 거품을 품고 있었고 다음 물대포가 등장할 때까지 쉬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백남기 어르신이 다쳤던 그 현장에 1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거긴 고작 2차선 도로였고, 연이어 쏟아지는 물대포로 인해 차도보다 인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대포를 쏘아댔다.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다쳤다고 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것 같다고.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곧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또 다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누군가 다쳤다고 했다. 머리가 찢어지고, 팔이 부러졌다고 했다. 또 다시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방송차에도 물대포를 쏘아대던 경찰은 앰뷸런스에도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앰뷸런스도 곧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물대포는 끝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물대포를 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틈틈이 확인한 뉴스에서 백남기 어르신이 위독하여 가족을 호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또 다시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종로구청 입구를 떠나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광화문에 결합했다. 그 곳도 종로구청 입구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더 넓다고 해야 하나. 소화기와 캡사이신, 물대포 등이 즐비한 곳에서 우리는 숨을 쉬지 못해 힘들어했고, 우리를 적대시하는 경찰을 보며 분노했고, 경찰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어 서글펐다.

 

 

 

경찰이 인도까지 올라와 사람들을 밀어내며 차벽을 넘어와 사람들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한문 앞에서 정당연설회를 하고자 했고, 곧이어 경찰들이 떼로 몰려오며 우리를 인도로 밀어내며 그들도 인도까지 올라왔다. 이미 인도에 올라왔다고, 밀지 말라고, 당신들은 인도 밖으로 나가라고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도 그들은 여전히 아랑곳이 없었다.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그 때, 백남기 어르신이 입원한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전 날, 비가 온 날씨덕에 하루종일 서있기도 했고, 무지막지하게 경찰이 우리를 인도밖으로 밀어내는 통에 몸살에 시달렸다. 그리고 여론전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폭도가 됐고, ‘총을 맞아도 싼사람들이 되었다. 그 날의 경찰이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듯, 여론을 호도하는 정치인들 역시 우리를 없어져야 할 존재로 대했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국민이 아니었다.

 

, 곧 총선을 앞두고 너나할것없이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며 뉴스에 한번이라도 더 나기 위해선 원래부터 바닥이었던 인권감수성을 땅에 처박는 여당의 의원들의 이야기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사실 더 화가 나고 서글픈 것은 노동개악 잘 못 된 건 아는데, 국정교과서 찬성하지는 않는데,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쩌냐-‘라고 이야기하며, 분명히 선을 긋는 우리 편을 가장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국정교과서 때문에 길거리에서 서명을 받는다며 한참 떠들어대던 야당은 전혀 우리를 지켜주지 않으며 우리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이렇게 여당이 여론을 폭도로 몰아갈 때, 80년 대에 민주화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 거리에서 싸웠다며 큰 소리치는 그들은 모두 죽었다. 당신들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가 고작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서글프기만 하다.

 노동당

 

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었고, 인권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인류는 끝도 없이 피 흘리며 싸워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의 보장을 받기 위해 우리는 끝도 없이 싸워야 한다. 지금 당장은, 우리의 편이 아닌 법 때문에 아마도 우리는 계속 많은 벌금을 내야 할 것이며, 누군가는 감옥에 갈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정치적인 표현인 시위에서 차벽을 넘지 말라고, 신고하지 않은 도로로 가지 말라고 차벽 안에 갇혀있으라고 하는 것은 시위자체를 죽이는 것이다. 우리는 차벽 앞에서 문화제 하자고 모인 것이 아니다. 우리의 분노를, 우리의 요구를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모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요구를 알아주기를 바랐기에 행진을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우리를 보지 못하게,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도록 우리를 고립시키고, 고립시킨 우리에게 온갖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에, 그리고 그 폭력에 대해서 여당은 공세를 퍼붓는데 제대로 된 싸움조차 하지 못하는 야당은 이제 정말로 싸울 수 있는 세력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려 놓아야 한다.

 

국민을 적으로 대하는 정부의 부당함을 참지 못해서, 차벽이 막혀있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늘 그곳으로 갔다. 누군가는 이 얘기를 듣고, ‘80년대에 살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80년대의 그 치열함을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는 후졌기 때문에 거리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시대가 3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고, 결국에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부디, 70-80년대에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회귀한 시대에서 생명마저 위협받고 있는 백남신 어르신의 쾌유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