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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서초구 청년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기대와 우려

<서초구 청년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기대와 우려>

지난 5일, 서초구가 서초구의회에 ‘청년 기본소득 실험을 위한 조례개정안’을 제출했다고 합니다. 왜인지 서초구의회 홈페이지 접속도 되지 않고, 서초구 홈페이지에도 관련 내용이 없어 조례개정안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언론에 인터뷰한 내용을 위주로 서초구 청년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약은 약사에게 묻듯 기본소득에 관해선 기본소득당의 입장을 궁금해 하는 분이 많으니까요^^

1. 서초구 청년 기본소득 실험 내용

서초구에 1년 이상 거주한 만24~29세 청년 중 1000명을 선발하고, 이 중 무작위로 뽑은 300명에게 2년 동안 월 52만 원의 청년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합니다.

300명을 뽑는 이유는 예산을 적게 들이면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수라고 밝혔습니다. 만24~29세로 선정한 이유는 코로나 이후 취업이 어려워진 청년을 돕는 것이라 밝히고 있고, 월 52만 원을 책정한 이유는 현재 1인 생계급여가 52만 원을 웃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300명에 뽑힌다면 청년 한 명은 2년 동안 총 1,248만 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됩니다. “서초구 기본소득 실험, 청년에 무조건 1250만 원 준다” 등의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청년, 액수 등이 주목받는 셈입니다.

2. 기대

기본소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정치공동체에서 시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공동체가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고,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합니다. 정책시행을 위해서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서초구는 ‘실험’의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또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기본소득 시행을 위한 한 걸음을 뗐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또, 월 52만 원을 선택한 것 역시도 새롭습니다. 기본소득당은 대한민국을 세계 최초 기본소득 도입 국가로 나아가자며, 월 60만 원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2020년 1인 생계급여가 527,168원이기에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1인 생계급여보다 더 많은 액수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주 충분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정책적 근거를 현행 복지제도에서 찾은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제안할 때,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기본소득 액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어떤 재원으로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도 기본소득 액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생계를 가능하게 할 정도여야 하는지 여부도 앞으로 기본소득 논의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취지로 월 52만 원을 결정한 것은 ‘충분한 기본소득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와 ‘기본소득 도입의 출발을 어떤 액수부터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활발히 논의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3. 우려

(1) 0.84% 청년만 받는다.

9월 기준으로 서초구에 사는 만24세~29세 청년은 35,533명입니다. 1년 이상 거주 단서를 붙여도 2019년 3월 기준 36,540명의 만24세~29세 청년이 서초구에 살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것입니다. 35,533명 중 월 52만 원의 기본소득을 받는 수는 단 300명, 해당 나이대 청년의 0.84%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1000명에도 선발되지 않거나 1000명에는 선발됐지만, 300명에 속하지 않은 청년들의 박탈감이 우려됩니다. ‘로또 분양’ 논란처럼 ‘로또 서초구 청년 기본소득’이라는 논란이 예상됩니다. 청년 입장에서 월 52만 원, 적지 않은 돈이기 때문입니다.

1000명의 청년을 어떻게 선발한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3만5천여 명의 청년 중 청년 기본소득 실험 선정 기준에 따라 ‘선별’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300명에 선발된다면, 향후 노동여부나 자산, 소득에 대한 심사가 이어지지 않겠지만, 300명을 추첨하기 위해 선발하는 1000명 역시 개별성, 무조건성, 보편성 등 기본소득 원칙에 따라 선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실험을 설계할 때 기본소득의 원칙을 가장 우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실험에만 그치게 될 가능성

우리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공통부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배분하는 방안으로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 소득과 자산의 재분배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서초구청은 ‘재산세’를 깎아준다고 발표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기초지방단체는 국가와 별도로 세금을 걷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재산세’는 기초지방단체의 재정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재산세를 깎고, 한편에서는 예산을 이유로 300명의 청년에게만 청년 기본소득 실험을 할 때, 실험의 목적을 무엇으로 봐야할지 혼란스러울 따름입니다. 실험이 잘 설계되고 실험의 결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실험단계가 아니라 정책시행 단계로 이행될 때 어떻게 시행할 생각인지 밝히지 않는다면, ‘인기영합을 위한 실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3)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 폄훼하는 홍보

실험 계획을 밝히면서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에 대한 예를 많이 들었습니다. 실험 단계를 거치지 않고, 1500억 원이나 되는 예산을 썼다며 ‘매표행위’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던졌습니다.

우선 예산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초구 2020년 예산은 6,497억 원입니다. 그중 청년 기본소득 실험에 연 22억을 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20년 기준 서초구 예산의 0.33%를 쓰는 것입니다. 경기도 2020년 예산은 약 27조 원입니다. 그중 조은희 구청장이 언급한 청년 기본소득 1,500억 원은 2020년 경기도 예산의 0.55%에 불과합니다. 수치상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청년 기본소득 정책을 ‘매표행위’로 볼 근거가 없을뿐더러 서초구의 300명 청년과 달리 경기도 거주하고 만24세인 82,147명의 청년이 기본소득을 받습니다.

실험 단계 없이 1500억 원의 예산을 쓴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 시행 이전에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이 있었습니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은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과 달리 지역상품권으로 발행됐고, 주민센터에 직접 받으러 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주민센터에 다음 분기 청년배당을 수령하러 온 청년 대상으로 정책만족도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 그 조사를 바탕으로 제가 2017년 2월에 진행된 토론회에 토론자로 함께 하면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경기도는 청년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조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이 시도하는 청년 기본소득 실험은 ‘과학’이고,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매표행위’로 매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습니다. 정말로 실험의 과정을 거쳐 국민을 설득하고 더 크고 넓은 범위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힘쓰는 구청장, 나아가서 서울시장 후보가 되고자 하신다면, 보다 공정하고 정책적인 시각에서 기본소득 관련 입장을 제시하기를 바랍니다.